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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장’ 성룡이 AI 시대를 극복하는 방법…’포풍추영’ 리뷰


[TV리포트=강해인 기자] 배우 성룡이 현역 액션 스타로서 가치를 재입증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성룡의 최근 영화는 어딘가 아쉬웠다. 그의 신작이 개봉할 때면 정겨운 삼촌을 본다는 마음에 반갑게 극장으로 향했지만, 작품의 만족도는 큰 편이 아니었다. 왕년의 액션 스타가 노년의 육체를 이끌고 펼치는 액션과 옛 감성을 자극하는 장면에서 추억 여행을 하는 데 그치는 경우가 잦았다. 옛 영웅을 향한 안부인사 외엔 새로운 순간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번 신작은 달랐다.

영화 ‘포풍추영’은 감시 시스템을 뚫고 수십 억을 탈취한 범죄 조직을 쫓는 마카오 경찰들의 이야기다. 범죄현장에서 유유히 사라지는 조직을 소탕하기 위해 마카오 경찰은 은퇴한 범죄 추적 전문가 황더중(성룡 분)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황더중은 감시반을 구성해 이 조직의 우두머리 푸룽성(양가휘 분)을 잡으려 하지만, 오히려 그의 덫에 빠지며 큰 위기를 맞게 된다.

이번 영화에서 가장 돋보이는 건 푸룽성을 중심으로 한 빌런들의 활약이다. 이들은 A.I 시대에 걸맞은 기술력으로 경찰을 가지고 논다. CCTV를 조작하고, 각종 데이터를 자유자재로 활용해 경찰을 따돌린다. 그리고 이들은 와이어 등을 활용한 스타일리시한 액션과 화려한 변장술을 통해 볼거리를 제공한다. 티키타카가 돋보이는 빌런들의 액션은 리드미컬한 편집과 시너지를 내면서 극의 속도감과 몰입도를 한층 높였다.

이 조직의 우두머리인 푸룽성은 치밀하고 노련한 킬러 본능으로 경찰들을 위협한다. 그는 변장술로 눈을 속일 수 있고, 상대를 단번에 죽일 수 있는 암살 기술도 있어 위압감이 상당하다. 푸룽성은 조직원들에게 양아버지로 불리는데, 이들은 가족이면서도 서로를 견제하는 등 미묘한 갈등이 있어 이야기의 전개를 더 예측하기 어렵게 한다. 여기서 푸룽성의 양아들이자 쌍둥이인 시왕과 시멍 역의 츠샤는 빌런 측에 강렬한 드라마를 만들어 관객의 마음을 흔든다.

‘연인'(1992), 동사서독'(1995) 등에 출연한 베테랑 배우 양가휘는 킬러로서의 냉철함과 양아들을 향한 뜨거운 마음을 가진 복합적인 캐릭터 푸룽성을 잘 표현하며 영화에서 가장 돋보이는 순간을 만들어 낸다. 베테랑 배우만이 보여줄 수 있는 안정감과 폭발적인 감정 연기로 ‘포풍추영’을 주도한다. 그의 연기 덕분에 성룡을 비롯한 배우들의 연기가 더 잘 살 수 있었다.

성룡은 ‘포풍추영’에서 디지털 시대에도 옛 감성과 수사 방식을 가진 경찰 역을 맡아 해결책을 제시한다. 노장의 가치를 증명하는 황더중의 모습은 1960년대부터 영화에 모든 것을 바쳤던 성룡이 이 시대에도 자신의 자리가 있다는 걸 증명하는 듯해 묘한 감정을 갖게 한다.

그리고 주도적으로 극을 움직였던 옛 작품들과 달리 성룡은 ‘포풍추영’에서 주로 팀을 운영하고 정보전을 지휘하는 역을 맡았다. 직접 현장에 뛰어들기도 하지만 체력적으로 지친 표정을 자주 드러낸다. 대척점에 있는 푸룽성에게도 밀리는 등 예전 같지 않은 모습은 낯설고, 성룡의 노쇠한 얼굴과 육체는 울컥하게 하는 지점이 있다.

이번 영화를 중심에서 끌고 가는 건 허추궈(장쯔펑 분)다. 성룡은 허추궈의 멘토이면서 그녀와 유사 부녀 관계를 형성하며 성장을 돕는다. 성룡이 전면에서 활약하던 모습이 그립고, 그래서 아쉬울 수 있지만 노년에 접어든 성룡에겐 ‘포풍추영’에서의 포지션이 더 자연스럽고 현실적인 대안으로 보인다.

동시에 트렌디하고 스피디한 액션 영화에서 성룡이 가장 빛날 수 있는 위치이기도 했다. 얼굴의 주름에서 느껴지는 세월의 무게에 가슴이 아픈 것을 부정할 수 없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성룡이 던지는 대사는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는 목소리로 들려 묵직한 울림이 있다. 긴 시간을 견뎌낸 배우만이 보여줄 수 있는 특별한 순간이다.

성룡의 변화를 언급했지만, 이번 영화에서도 그에게 기대했던 클래식한 액션은 준비돼 있다. 여의봉처럼 길이가 변하는 도구를 활용한 액션을 비롯해 지형지물을 재치 있게 활용해 웃음을 주는 장면은 옛 향수를 자극한다. 여전히 현역으로 자신만의 액션을 추구하고 있는 장인의 모습엔 재미와 함께 숭고함이 있어 뭉클함을 느낄 수 있다.

‘포풍추영’은 강력한 빌런을 바탕으로 탄탄한 갈등구조를 만들었으며 성룡 역시 과거의 답습이 아닌 적응과 변화를 택하며 이야기를 더 풍성하게 했다. 거듭되는 반전과 딜레마에 빠진 인물들의 선택도 흥미롭다. 서사와 볼거리가 잘 조화를 이룬 범죄 액션극으로 최근 극장에서 본 성룡 영화 중 가장 인상적인 작품이다.

강해인 기자 khi@tvreport.co.kr / 사진= 영화 ‘포풍추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