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V리포트=김나래 기자] 다 된 밥에 재 뿌리기. 공연을 기대했던 관객들은 그야말로 재 뿌리기의 피해자가 됐다.
공연 시작 불과 5분을 앞둔 오후 7시 25분. 연극 ‘라이프 오브 파이’의 개막을 알리는 화려한 조명 대신 관객들에게 떨어진 것은 사상 초유의 당일 취소 통보였다.


▲미흡한 준비가 부른 참사…버려진 ‘시간’은 누가 보상하나
지난 10일, 오후 7시 30분 개막 예정이었던 연극은 시작 5분 전인 7시 25분경 돌연 취소를 공지했다. 사유는 “기술적 결함 발생”이었다.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사고가 벌어지는 일들은 종종 발생하는 일이다. 다만 모든 사태 속 피해를 직면으로 맞은 관객들은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이고 말았다.
취소 통보와 동시에 현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고 설렘으로 가득했던 공연장은 분노와 허탈함이 뒤섞인 북새통으로 변했다. 입장을 위해 줄을 서던 관객들 사이에 “기술적 결함으로 공연을 취소한다”는 안내방송은 그저 허공의 메아리처럼 울렸고 날벼락 같은 소식에 관객들은 무거운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제작사 측은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듯 “결제 금액의 110%를 환불하겠다”며 사태 진화에 나섰다. 통상적인 보상 규정에 10%의 위로금을 얹은 셈이다. 그러나 10%의 추가 보상은 관객들이 지불한 기회비용과 허탈함에 비하면 턱 없이 부족했다. 특히 이번 공연은 한국 영화계를 이끄는 배우 박정민이 출연을 예고, 그를 보기 위해 티켓 전쟁을 치른 팬들이 모인 자리였다. 실제로 온라인에는 “박정민 얼굴 한 번 보려고 몇 달을 기다렸는데 허탈하다 못해 화가 난다”, “기차 왕복 차비랑 연차는 누가 보상하나” 등 울분이 쏟아지고 있다. 이처럼 몇 달을 손꼽아 기다려온 이들의 기대감은 단순한 계산으로 환산될 수 없다.


▲박정민은 ‘대안’을 냈고, 제작사는 ‘환불’ 뒤에 숨었다
해당 사태로 피해를 본 건 무대를 오르는 배우들도 마찬가지였다. 227일간의 태평양 표류기를 그려내기 위해 땀 흘린 27명의 배우와 퍼펫티어(인형 조종가)들은 미흡한 준비로 인해 공연을 선보일 기회를 빼앗겼다. 그중에서도 주연 박정민은 비난의 화살을 그대로 맞아야 했다. 제작사의 기술적 결함으로 빚어진 참사였으나 대중의 눈과 귀는 자연스럽게 극의 중심이자 흥행의 보증수표였던 그를 향했다.
이런 상황에서 박정민은 제작사 대신 고개를 숙이고 대안을 고민해야 했다. 11일 소속사 계정을 통해 장문의 사과글을 남긴 그는 “어제저녁 공연에 찾아와주신 모든 관객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운을 뗐다. 이어 “미처 열리지 않은 극장 문을 등지고 발걸음을 돌리셨을 관객분들의 허탈함을 생각하면 입이 열 개라도 드릴 말씀이 없다”고 거듭 고개를 숙였다.
준비 기간부터 연극의 얼굴 역할을 해온 그는 비난의 여파를 온몸으로 받으면서도 “대안 없는 사과는 되레 무책임한 행동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며 제작사 측에 특별 회차 편성에 대한 의견을 전달, 관객들을 위로할 보상안을 직접 고안해 내며 홀로 분투했다.
반면 제작사의 행보는 실망스럽다 못해 참담하다. 배우가 직접 특별 회차라는 대안까지 제시하며 수습에 발 벗고 나서는 동안 제작사는 110% 환불 뒤에 숨어 실질적인 책임으로부터 한 발짝 물러났다. 이번 사태를 통해 제작사는 미숙한 위기관리 능력뿐만 아니라 작품을 함께 만드는 파트너인 배우와 관객을 대하는 기만적인 태도를 여실히 드러냈다.
상처 입은 관객과 배우의 마음을 치유하는 것은 제작사가 앞으로 짊어져야 할 무거운 숙명으로 남았다. 주인공 파이가 절망적인 표류 끝에 마침내 육지에 닿았을 때 찾고자 했던 진실과 위로처럼 관객들 역시 제작사의 진정성 있는 사과와 책임 있는 대책을 원하고 있다.
김나래 기자 [email protected] / 사진= TV리포트DB, 에스엔코 제공